[오마이뉴스] 야구방망이 만드는 한식 요리사, 이런 사연이...(2016.03.04)

관리자
2017-05-25
조회수 808

야구방망이 만드는 한식 요리사, 이런 사연이...샘퍼니 이효삼대표 그의 사무실 뒤편에는 온갖 배트 수치가 적혀 있었다.

▲ 샘퍼니 이효삼대표그의 사무실 뒤편에는 온갖 배트 수치가 적혀 있었다.ⓒ 강윤기

점심 한 그릇만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지만 대학생 혹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있어 점심 식사 비용은 만만치 않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입장에서 값비싼 음식 가격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지갑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요즘 젊은이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식 스타 셰프가 있다. 이 음식 장인은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선'의 이름을 걸고 칼칼하고 담백한 음식을 내놨다. 단지 상갓집에서 먹는 음식이라 생각한 육개장은 젊은이들의 주린 배를 채웠다.


착한 가격과 정직한 맛으로 신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부 공인 1호 한식 스타 셰프인 이효삼씨는 처음 요식업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철칙이 있다. 강호의 협객이 담담히 자기의 칼을 벼리듯 그 또한 음식을 요리하기에 앞서 녹슬고 무뎌진 칼날을 다시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요리의 시작은 재료 손질이기에 주방의 필수품 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 또한 다르지 않다. 야구 선수들에게 있어 배트는 명검(名劍)이다. 주방장이 칼을 선택하고 검객이 칼을 고르듯 야구 선수들도 배트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그만큼 배트가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효삼씨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날카로운 칼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닌 야구 검객들의 검을 만들기로 도전한 것이다. 음식이 아닌 배트를 만들어 내는 샘퍼니(SAMPANY) 대표 이효삼씨를 지난 10일 영등포구 한 건물 2층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무실 작은 공간에는 아크릴판에 적혀 있는 암호 같은 숫자와 책상,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배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마침 택배기사에게 정신 없이 물품을 넘기고 있는 이 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식사하셨습니까?" 


첫 마디 역시 푸근한 인상을 지닌 이 대표의 넉넉한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이 대표는 "혹시 제가 원래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아시나요"라고 기자에게 질문하였다. 기자가 셰프라고 답하자 이 대표는 "맞습니다. 저는 요식업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군 제대후 셰프의 길을 가다


 요리사 이효삼씨

▲요리사 이효삼씨ⓒ 강윤기

- 요식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직업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제가 만드는 배트를 설명할 수가 없더군요. 같으면서도 다른 상반된 느낌이니깐요. 노래 가사처럼 음식과 배트는 내 거인 듯 내 것 아닌 듯 서로 썸을 타는 사이입니다."(웃음)


- 이 대표님께서는 셰프라는 직업을 언제 선택하셨습니까?

"사실은 제가 연세대학교 3학년 때까지 야구를 했습니다. 막상 대학에 갔는데 다들 야구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운이 좋아 대학에 왔지만 친구들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죠. 그래도 열심히 연습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2학년 때 채종범(kt 코치)의 타구를 쫓아가다 그만 펜스에 부딪혀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참 한숨만 나오더군요. 나보다 다들 야구 잘하는데 나는 아파서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나 지고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살아남기 위해서 일주일에 만 개씩 스윙 연습을 했어요. 강훈련을 했더니 이번엔 손가락이 부러지는 겁니다. 거기서 느꼈죠. 아 이제는 야구를 그만 놓아줄 때다. 그러고선 대학교 3학년 때 관뒀어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유급을 한 관계로 제 동기들이 한 살 어렸죠. 신명철(kt 코치)이 동기였습니다. 조인성(한화), 박정진(한화)도 같은 팀 형들이었죠. 옛날 일이네요.(웃음)


- 엘리트 선수 생활을 하다 관두면 자연적으로 군 입대도 늦어지지 않나요? 

"네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다 군 입대를 했습니다. 제가 제대를 2004년 1월에 제대를 했죠. 제 인생의 항로가 바뀌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제가 말년 병장일 때 일어났어요."


-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입니까?

"2003년 12월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요. 저희 아버님께서 상도동에서 갈빗집을 하셨어요. 저희 큰 형님이 장남이라 물려받아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2004년 1월에 매출액이 평소의 1/10으로 줄어들어요. 그 충격으로 인해 급성간염으로 쓰러지셨죠. 그때 작은 형은 호주에서 유학 중이고 저밖에 집안을 추스를 사람이 없었어요. 사실은 무역 쪽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어 사업자 등록까지 한 이후였는데 개시도 못하고(웃음)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 20대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습니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식당 일을 봐왔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매출이 얼마 정도일 때 사람을 몇 명 고용해야 하는지 고기를 썰어주는 집이면 사람이 몇 명 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터득했죠. 26, 27살 나이에 사장 아들이라고 들어왔는데 20년 이상 오랫동안 근무하신 분들이 저를 보기에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민망한데 잘 따라와 주셨죠."


- 대표님은 슬럼프가 없으셨나 봅니다. 

"아닙니다.(웃음) 정신없이 한 5년 일했을까요? 어느 날부터인가 고민이 되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스스로 뭔가를 해놓지 않으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본인이 오픈 한 식당은 눈 감고도 안다. 전화하면 어디 서랍에 깊숙이 보면 뭐가 들어 있다. 그런 부분이 없더군요. 상도동에서 3년, 여의도에서 2년 일하게 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깊이 알아야 여러 가지 시너지가 나고 융합이 될 텐데 모르니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공부를 하자 생각하고 대학원에 가서 MBA과정을 밟았지만 매우 갈증이 났어요. 워낙 제가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목마름이 해결이 되지 않더군요. 고민끝에 소규모 자본을 들고(1800만 원) 신촌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 신촌에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는 어땠나요?

"어휴 막막했죠.(웃음) 아침 7시부터 신촌역에 가서 매일 명함이 붙은 커스터드를 돌렸습니다. 첫날 매출액이 1만 원, 그 다음날이 2만 원~ 3만 원 내외였어요. 그러던 것이 지금은 150명에서 200명씩 오십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 신촌에 독립 하고 재미 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신촌에 가게를 연지 2년째 되는 해였어요. 그해 여름에 정말 많은 양의 비가 내렸거든요. 저희 가게가 지하이다 보니 엄청난 물이 자꾸 흘러 들어오는 거예요.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서 내가 다시는 지하에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웃음)"


칼을 잡고 요리하던 셰프, 배트 제작에 도전하다


- 요식업을 하다가 갑자기 배트 제작에 나선 것은 단순히 선수 출신으로써 호기심으로 도전하신 건가요.

"이것도 설명하자면 재미있는데요.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야구 선수를 꿈꿨는데 부상으로 관둔 저에게 다시 야구를 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무대가 달랐어요. 사회인 야구 시합을 하는데 대타로 뛰어 달라는 제의가 왔어요."


- 사회인 야구가 리그 수준에 따라 선수 출신이 한 명씩 뛸 수 있거든요.

"야구를 관둔지 대략 십년 만에 이번에는 새로운 무대인 사회인 야구에 첫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놀랐던 부분이 뭔지 아세요?"


-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인야구 동호인 분들이 야구를 대하는 자세에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운동할 때 대하는 야구와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야구를 대하는 부분이 달랐어요. 매우 귀하고 정성스럽게 야구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 뭉클함을 느꼈어요."


- 사회인 야구리그는 아직 저변 확대가 더 필요합니다. 마땅히 야구할 공간도 없고 장비도 비싸니깐요. 그러다 보니 더 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맞아요. 하루는 사회인 야구를 오래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배트를 새로 구입했다고 자랑하더군요. Z2K라고 하는 배트였는데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보니 중고 가격으로 150만 원이라고 하더군요. 에이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친구가 야구용품 사이트를 보여주면서 가격을 한번 보라고 했어요. 제 눈이 휘둥그래 해졌습니다. 사이트를 보니 진짜로 가격이 150만 원에서 200만 원 하더라고요. 정말 놀랐습니다."


- 배트 한 자루가 200만원이라 놀랍네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우선 미국의 벼룩시장 사이트 크레이그스리스트에 접속해서 잘 찾다 보면 '우리 남편 출장 간 동안에 정리한다' 해서 열 자루에 백 불(10만 원) 이럴 때 한두 자루 껴 있을 때 운 좋게 구입했죠."


- 그럼 배트를 싸게 사다가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셨어요?

"저는 배트를 구입하면서 생각을 했어요. 음식을 하는 입장에서 뭔데 이렇게 비쌀까 하고 정말 궁금해서 그날로 배트를 직접 분해해 봤어요. 원가를 철저히 따져봐도 저 정도 가격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에 최고의 배트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배트 제작자로서의 삶이 이렇게 시작되는 거였군요.

"처음에 배트 제작할 때 정말 어려웠어요. 배트가 밸런스가 맞아야 해요. 한마디로 말해 무게 중심이 위아래가 같아야 초보자들은 손쉽게 스윙을 할 수 있어요. 그래야만 배트가 잘 돌아간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기술이 없다 보니 이 부분(밸런스)을 잡아내기가 쉽지가 않았죠. 포기할 뻔했습니다."


- Z2K 배트는 미들 밸런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회인 야구 동호인들도 가볍게 느끼며 스윙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Z2K 배트는 정확히 미들 밸런스예요. 이 배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배트를 직접 보여줌) 흔히들 윗부분에 무게가 쏠려있는 탑 밸런스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연구를 계속했는데 어떤 생각이 든지 아십니까?


- 대표님께서 상당히 상심하셨을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정말 범접할 수 없는 기술의 차이를 처음에 느꼈다죠. 기술적으로 밸런스 숫자를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와 역시 R&D 비용을 지출하는 큰 회사 답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새벽 2시 40분에 불현 듯 머리를 스치고 생각이 지나는 겁니다. 아! 바로 이거구나 절로 손뼉을 치면서 유레카를 한 거죠."


- 어떤 기술이었습니까?

"지금은 새로운 기술들이 있어 다른 방법으로도 제작이 가능합니다만 그 당시 유레카를 외치며 알게 된 부분은 바로 손잡이 부분에 비밀이 있었어요."


- 손잡이 부분요?

"손잡이 부분이 무거워야 스윙 속도가 빠르게 유지됩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지만 손잡이 부분에 살짝 무게를 줬습니다. 비슷한 스윙 속도를 유지하면서 보다 더 배트가 무겁다면 그만큼 공은 멀리 날아가게 되거든요."


큰 호응을 이끌어낸 거번 배트, 그리고 이효삼 대표의 새로운 도전


거번 배트 이효삼 대표의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는 배트이다.

▲ 거번 배트이효삼 대표의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는 배트이다.ⓒ 강윤기

- 요즘 프로야구 레전드들의 DNA를 이식한 배트를 내놓으셨는데 이 배트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KBO 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이 선호하는 배트가 있어요. 가령 이승엽 선수의 경우는 탑 밸런스(무게중심이 윗부분에 있는)를 갖고 있는 배트로써 무겁습니다. 장성호 배트의 경우는 많은 안타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가볍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승엽(삼성), 장종훈(롯데 코치), 이종범(MBCSPORTS 해설위원), 장성호(KBS N 해설위원)의 선수 시절 사용하던 배트의 각종 수치(DNA)를 데이터화해서 알루미늄 배트에 적용한 것이죠."


- DNA가 이식된 배트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이름으로 배트를 만들었는데 단순 제 이익만 추구하고자 하기엔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나온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글쎄요.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저 때도 그랬지만 야구 선수를 키우는 학부모님들 부담이 되게 커요. 겨울철 국내 전지훈련하는데도 비용이 150만 원 정도가 필요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해외로 가자고 하죠. 우리 아들이 따뜻한 날씨에서 운동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150만 원은 굉장히 큰돈입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해외는 그 이상 비용이 들어가죠. 그런 부분을 알기에 저는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습니다."


-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택하셨습니까?

"제 꿈은 유소년 야구팀들이 공짜로 야구 배트를 썼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뭐 사회주의 이런 건 아니고요.(웃음) 장비에 들어가는 돈으로 차라리 더 좋은 거 먹이고 부담을 덜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당 배트(DNA배트)가 판매되면 1+1형식으로 그 선수의 이름을 빌려 유소년 야구 배트가 제공됩니다. 앞으로 2~3년 안에 유소년 선수들은 공짜로 배트를 쓸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봐요. 올 한 해에도 600~800자루 정도 지급될 것 같습니다."


- 지난해 12월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진행한 유소년 야구 클리닉에도 참여 하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손사래 치며) 단지 저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에 맞게 저 또한 아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 뿐입니다. 새로 개장한 돔구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니 즐거운 시간 이었습니다."


거번 배트 노란 거번 배트가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 거번 배트노란 거번 배트가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상처 받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싶은 이효삼


- 유소년 야구 배트 이외에도 한가지 더 도우려고 준비하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야구 선수를 해오면서 느꼈던 감정이 있어요. 잘 될 때는 잘 되지만 야구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슬럼프가 올 때도 정말 많아요. 또한, 저처럼 부상으로 인해서 야구를 하다 관두는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전화가 오면 이런 말들을 해요. '효삼아 TV 중계 봤냐? 내가 학창시절 때 더 잘했었는데 참 아쉽다'고 해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야구를 잘 했는데 부상이나 기타 이유로 인해 프로 지명을 못 받았거나 대학 진학 후에 한계를 느끼고 야구를 관둔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참 크나큰 마음의 상처입니다. 그래서 심리 치료 또한 필요해요."


- 멘탈 트레이닝은 현재 태릉선수촌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엘리트 체육을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심리 치료는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설사 운동에 실패했다고 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니깐요. 또 한 가지는 공부입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해요. 영어와 인문학 정도만 케어가 된다면 아이들이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 '공부'를 키워드로 생각하시는 거군요

"네 맞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우리 아이들 책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많은 독서를 통해 생각을 키운다면 운동하는 기계가 아닌 인성을 갖춘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말씀드린 부분이 당장 올해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꾸준히 한 발 한 발 의미 있는 전진을 하려고 합니다. 멘탈 트레이닝 코치는 빠르면 올해 말에 가능할 것 같아요. 와이프는 이 말 많이 합니다. 사서 고생 왜 하냐고?(웃음) 사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많이 혜택을 받아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부담 없이 건강하게 웃으며 운동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샘퍼니가 이런 부분으로도 많이 기여하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미일체(五味一體)란 말이 있다. 맵고, 향기롭고, 화려하고, 뜨겁고. 신비로운 다섯가지 맛이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이효삼 대표의 음식과 배트에 오미일체(五味一體)가 배여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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